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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3 15:45:44)
관리자
2)조선이라는 국호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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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길라잡이-다시보는 조선왕조실록

제 2장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유래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에 왕위에 오른 직후 내린 즉위교서에서 국호를 그대로 고려(高麗)로 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비록 새 왕조를 개창하였지만 고려가 500년 가까이 지속된 왕조였고, 또 새 왕조를 인정하지 않는 고려의 신하들이 많았기 때문에 갑자기 국호를 고치게 되면 고려의 유신들이 반발하고, 백성들도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조가 바뀐 이상 국호가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태조는 즉위한 지 한달이 조금 넘은 8월 29일에 명에 자신의 즉위를 해명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명에서는 굳이 태조가 즉위한 것에 트집을 잡지 않았으나 왕으로 책봉해주지는 않고 고려 권지국사(權知國事)라고 하면서 빨리 국호를 정해 보고할 것을 통보하였다.(11월 27일) 조선 조정에서는 명에서 국호를 정하라는 자문을 받은 그날 회의를 열어 이틀 뒤인 11월 29일에 명에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둘 중 하나로 국호를 정해달라며 주문사(奏聞使) 한상질(韓尙質: 한명회의 조부)을 명에 보냈다. 1393년 2월 15일, 한상질은 명 태조가 ‘동이(東夷)의 국호(國號)에 다만 조선(朝鮮)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이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으로 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고 한 명 예부의 자문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리하여 새 왕조의 국호는 조선(朝鮮)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면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후보는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조선(朝鮮)은 과거 국가들의 족보(?)에 있는 이름이다. 단군(檀君)이 최초로 건국한 국가가 조선이고, 기자(箕子), 위만(衛滿)도 그 국호를 그대로 썼다.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유래는 6가지 정도의 학설이 있는데 ⓛ『사기(史記)』조선전(朝鮮傳)의 주석; ‘鮮의 발음은 汕(산)이므로 汕水에서 그 명칭을 얻었을 것이다.’ ②『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쪽 끝의 해뜨는 땅이다. ③『동사강목(東史綱目)』; 선비(鮮卑)의 동쪽에 있다. ④신채호, 정인보: 소속(所屬)을 뜻하는 만주어 주신(珠申)에서 왔다. ⑤양주동: ‘밝새’의 음역이다. ⑥이병도: 아사달의 음역이다. 등인데 ②④⑤⑥은 지나치게 발음과 의미에만 치우친 해석이고 ③은 선비가 조선보다 늦게 나타나므로 근거가 없다. 『사기』조선전에 ‘연이 번성하였을 때 진번과 조선을 공략하여 예속시켰다.’라 하였고, 『한서(漢書)』지리지 낙랑군조에는 조선현의 지명이 있다. 그리고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예(濊) 편에는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조선은 ①이 말하는 지명일 것이고(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요동~한반도 지역일 것이다), 후에 이 지역을 차지한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국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 조선을 후보로 하였을까. 물론 당시에도 “조선 단군은 해동에서 처음 천명을 받은 임금”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단순히 단군만을 인식하여 조선이라는 명칭을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을 낙점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실록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삼봉 정도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경복궁의 명칭과 전각의 이름은 모두 그가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왜 조선이라는 국호를 채택하였을까 그 이유는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국호(國號) 편에 나타나있다.


해동은 그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선이라고 일컬은 이가 셋이 있었으니 단군,기자,위만이 바로 그들이다. 박씨,석씨,김씨가 서로 이어 신라라고 일컬었고, 온조는 앞서 백제라 일컬었으며 견훤이 후백제라 하였다. 또 고주몽은 고구려라고 일컫고, 궁예는 후고구려라고 일컬었으며 왕씨는 궁예를 대신하여 고려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명호를 세우고 서로를 침탈하였으니 비록 호칭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무슨 취할 것이 있겠는가. 단 기자만은 주 무왕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侯)에 봉해졌다. 지금 천자(명 태조)께서 “오직 조선(朝鮮)의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하다.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면 후손이 길이 창성하리라.”고 명하였는데 아마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하던 것으로 전하에게 명한 것이리니 이름이 이미 바르고 말이 순조롭게 된 것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을 설명하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교(敎)를 지어서 국중에 실시하니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조선이라는 이름이 천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기자의 선정 역시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 명 천자의 덕도 주 무왕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거니와 전하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것이 있겠는가. 장차 홍범의 학과 8조의 교가 금일에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공자가 “나는 장차 동주(東周)를 만들겠다.”하였으니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이 글은 당시 사대부들의 인식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기자동래설은 부정되고 있지만, 당시는 기자동래설을 사실로 믿었으며, 기자는 이 글에서도 나오듯이 성리학자들이 존숭하는 성인이었다. 따라서 국호를 조선이라 정한 것은 기자가 과거에 이룩한 성세(盛世)를 이루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물론 ‘중국의 허가 없이’ 국호를 참칭한 옛 국가들의 국명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사대주의적인 사고의 표현이지만, 당시 성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명에서 국호를 정하라는 자문이 오자마자 즉시 국호를 정해달라는 표문을 보낸 것을 보면 국호는 이미 조선으로 잠정 결정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 정부는 명이 트집을 잡을까 우려하였을 것이다. 명 태조는 의심이 많았고, 그런 때문에 고려 말에 고려 정부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사신을 억류하기도 하였다. 비록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친명 정책을 펴 왔지만 과연 명에서 역성혁명까지 쉽게 인정해 줄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니 그저 국호를 정해서 보고하면 명에서 상국을 무시한다고 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일부러 태조의 고향인 화령을 끼워 넣어 둘 중 하나로 결정해달라고 했을 것이다(위의 글에 화령이 빠진 것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명에서는 정도전(과 사대부들)의 교묘한 작전에 별 수를 쓰지 못하고 그(들)의 의도대로 조선을 국호로 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태조와 사대부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호를 임의로 정하지 못하고 명에 허가를 청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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